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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회사 퇴사한 이야기
    일상 2020. 1. 1. 22:00

     

     

    2개월 정도 작은 회사에 근무했던 이야기를 써놓으려고 한다. 밑에 요약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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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직원이 채 5명이 안 되는 아주 작은 회사였다. 정확하게는 사장을 포함해 세 명이었다. 업종은 밝힐 수 없지만 내 전공과는 무관한 곳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에 공고를 보았을 때는 거리가 가까워서 만약 합격하게 된다면 워라밸이 완벽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고 00명을 모집한다고 하기에 업무가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전에 다니던 직장은 제법 큰 회사여서 적당히 팀원들과의 소통을 하며 내 일을 하면 되는 곳이었기에 규모가 조금 작더라도 비슷한 환경이라면 적응하는 데에 크게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 거다.

     

    서류 심사에서만 수십 번 탈락하고 겨우 잡힌 면접에서도 몇 번 고배를 마신 뒤여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을 때 솔직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단정하게 차려입고 면접을 보러 갔다. 예상과는 달리 비좁고 답답한 사무실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렸었다. 사장은 계속 나에게 물어볼 게 있다면 물어보라고 했다. 도대체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겠는데 뭘 자꾸 물어보라는 건지? 회사 홈페이지는 먹통에 회사 이름을 검색해봐도 잡플래닛이나 크레딧잡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사무실이 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성 정보가 전부였다. 예상대로 이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사무실이 어수선하다며 머쓱하게 웃은 사장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웃기게도 나중에 물어보니 이사한 지 3개월(상태로 봐서는 거의 일주일 전에 이사했다고 하면 믿을 수준이었다)이나 되었다고 했다. 특히 내 전임자는 쓰레기를 잘 치우지 않는 사람(먹다 남은 커피는 물론, 널브러진 머리카락, 책상 위에 구석구석 숨겨진 벌레 알로 추정되는 이물질들...)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꼬박 이주가 지나고 나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합격 통보 받는 데 일주일, 첫 출근 날짜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00명이라는 공고가 무색하게도(아마 이런 곳 많겠지만) 덜렁 셋이서 남겨진 사무실 공기는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알고 보니 내 전임자가 그만두는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 직원을 뽑은 거라고 했다. 그리고 딱 일주일을 인수인계해준 전임자는 퇴사했다. 자리를 쓸고 닦고 정리하면서 그가 버리고 간 먹다 남은 음료(곰팡이가 피었다)와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치우는 건 정말이지 끔찍했다.

     

    다른 직원과 둘이 남게 되자 그분은 내가 홀로 출근하는 첫날부터 선을 그었다. 서로의 업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군분투하며 전임자의 몫을 해내려고 애를 썼다. 퇴근할 무렵 내가 느낀 것은 전임자가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고 정말로 혼자서 했던 일일까 하는 의문뿐이었다. 돈이라도 많이 주면 모르겠는데 이 많은 일을 혼자서 다 한다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짧은 인수인계 기간과 다른 직원의 모르쇠로 인해 일이 터졌다. 사장은 내게 책임을 물었고 나는 솔직히 죄송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임자가 해두고 간 일을 마저 해서 처리했을 뿐인데(거기다 내가 오류도 바로 잡아주었다) 오히려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장은 뒤끝이 심한 성격인듯 나중에 내게 따로 연락을 해서 그럴 땐 죄송하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는 것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직원의 말로는 사장이 밥을 차려주고 숟가락을 들려주면 먹는 타입이라고 했다. 그 일로 인해 뼈저리게 느낀 바였다. 사장은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입인 나에게 잘못을 다그치면서 한 달이나 됐으면서 아직도 모르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사수라도 있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 사장이 한 번만 확인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나를 문책하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공고에 올라온 것과 달리 훨씬 많은 업무(공고에 있는 업무+잡일이었는데 잡일이 더 많았다)와 기분대로 행동하는 사장, 분명히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다른 직원(물어보면 모른다면서 다 알려줬다) 때문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 새로운 사람이 뽑히길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지원자가 없는 것도 있고 사장은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대며 마음에 안 들어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매일 두통에 시달렸고 사장에게서 나는 이상한 냄새(입냄새는 물론이고 옷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사장을 불러 이번 주까지만 나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은 월말까지만 나와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나는 솔직히 후임을 뽑을 시간을 충분히 주었고 인수인계도 해줄 생각(아는 게 없어 인수인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였지만)이었는데 사람이 너무 안 뽑히니 죽을 맛이었다. 거기다 내가 너무 나약한가? 다들 힘들게 참으며 회사 다닐 텐데 나는 왜 못 버틸까? 하는 자괴감이 들어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말일까지는 나오기로 결정됐다.

     

    마침내 후임이 들어왔고 아는 선에서 최대한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빨리 뽑았으면 더 오래 해주었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게 내 책임은 아니었다. 후임은 첫 출근 날, 퇴근하기 전에 나와 둘이 있을 때 내게 말했다. "하는 일에 비해 받는 돈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고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내 전임자는 n년을 일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 역할을 한 달만에, 그것도 일주일 인수인계를 받은 후에 해내기를 요구받았다. 어차피 거쳐갈 직장이라고 쉽게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제일 중요한 건 회사에 비전이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하고 사장은 일이 잘못되면 무조건 직원들 탓을 하고 일을 총괄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책임은 지지 않고 그 자리의 맛에만 취해있는 그런 사람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일을 계속 하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답은 '아니오'였다.

     

     

     

    ※요약※

    1. 작은 회사 가지 말라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은 정말 겪어본 사람들이 해주는 것

    -겪어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2.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퇴사할 것.

    -참다가 병나는 것보다 낫다.

     

    3. 최소 한 달 전에는 퇴사 의견을 밝힐 것.

    -한 달이 지나면 법적으로 문제 없이 퇴사가 가능하다. 인수인계는 원래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안 해도 상관없다.

     

    4. 가능하다면 잘 하는 일, 아니면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 일을 선택할 것.

    -업무가 익숙하다던가 배우는 재미가 있다면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회사에 붙어있으면서 이직의 기회를 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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