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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2020. 3. 28. 20:37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이 쉽지 않기에 집에 묵혀둔 책 읽기 퀘스트를 수행 중이다. 이번에 읽은 것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라는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고 미국 지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가끔 지루한 부분도 더러 있었지만 어쨌든 끝까지 읽긴 했다.

     

    (뒷표지의 소개글을 인용한다)

    월가의 변호사 벤은 왜 마운틴폴스의 사진가 게리가 되었을까?

    벤과 게리는 다른 이름 같은 인물!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한 뉴욕 월가의 변호사 벤은 일생일대의 치명적인 실수를 감추기 위해 완전범죄를 획책한다. 죽은 게리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벤은 몬태나 주의 산간지방인 마운틴폴스로 도주해 새 삶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심심풀이 삼아 찍은 인물사진이 지역 신문에 게재되면서 벤은 평생의 꿈인 사진가로 유명해진다. 매스컴의 관심이 쇄도하는 가운데 벤은 숨겨온 과거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후략)

     

    거의 책을 안 읽어도 되는 수준의 소개글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벤이 왜 게리를 죽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뒤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아무튼 줄거리는 이러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변호사가 된 벤은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이다. 벤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어째선지 차갑게 식어있다. 잠도 못자게 자꾸 울어대는 둘째 아들 조시와 패스트푸드만 찾는 첫째 아들 애덤을 돌보는 일은 피곤하다. 원래 사진가가 꿈이던 벤은 지하실에 암실을 마련해두고 온갖 장비들을 사들인다. 언젠가는 사진가로서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

     

    아내 베스와의 관계가 점점 더 나빠져 가던 어느 날, 벤은 아내가 게리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게리를 찾아갔다가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게 되고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똑똑한 머리를 가진 벤은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게리가 되어 살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고대하던 사진가로서의 삶이다.

     

    여차 저차 하여 마운틴폴스에 정착하게 된 게리(벤)는 현금만을 사용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중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고 일도 잘 풀리게 된다. 원하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점점 더 불안해지고 유명세도 썩 달갑지가 않다. 누군가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게리(벤)는 또다시 위험에 처한다.

     

    나는 보통 주인공(남녀 불문)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보는 편인데(대부분의 독자가 그렇겠지만) 이 책은 어쩐지 결말로 갈수록 주인공에게서 점차 떨어져 나오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나도 운이 좋게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간다. 아무리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벤은 범죄자다. 그것도 사람을 죽이고 그 사실을 은폐한 뒤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살인범이다. 소개글에서는 벤이 게리를 살해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 아내의 외도 상대라고 해서 그를 죽인 것을 실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뭐 그 상황이야 우발적이라고 말할 순 있겠는데 그 이후에 너무나도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그 사람의 삶을 빼앗는다. 거기다 아주 멀리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쳐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결국에는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으니까.

     

    놀랍게도 이 책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난 방향에서 막을 내린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뭘까? 책의 앞표지에 쓰여 있는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 이야기!>일까? 벤이 겪는 슬픔, 아내의 외도로 인해 받은 충격, 동떨어진 삶에 대한 갈망... 누구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불행하게 만든 아내,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아이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작가는 혹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아내의 외도로 그 상대방을 '실수'로 죽이게 된다면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멀리멀리 도망치는 동안 너무나 괴롭고 힘들겠지만 참고 살아가다 보면 원래의 삶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고.

     

    애초부터 벤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포커스가 벤에게 맞춰져 있어 아내 베스가 나쁘게 묘사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마운틴폴스에 가서는 많은 사람들이 벤에게 관심을 가지며 여성들이 자꾸 접근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엔딩마저도 그렇게 돼버려서 참...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꿈꾼다. 평범한 회사원(정확히는 변호사지만 어쨌든)이지만 사진가로서의 삶을 꿈꾸던 벤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는 방법으로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한들 정말로 행복할까? 그 사실을 들켜서 누군가에게 모든 과오를 털어놓고 용서(정말로 용서했을지는 모르지만)받는다면 자신이 죽여버린 그 사람에 대한 속죄도 되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벤이 게리에게 미안하거나 그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벤이 걱정했던 건 '죽은 젊은 사진가 지망생 게리'가 아니라 '게리를 죽인 자신의 삶이 쫑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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