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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2020. 7. 7. 21:26

     

    가끔씩, 아주 유명하지만 읽기 어려운 책을 만나곤 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읽기를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하고 방치해두었던 책이지만 이번에는 드디어 완독에 성공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책의 첫 장면에서부터 한 남자가 눈이 멀게 된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차를 출발시키지 못한다. 그런 그를 도와주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남자도 이내 눈이 멀게 된다. 모든 것이 백색으로 보이는 실명 상태가 마치 전염병처럼 도시에 퍼져간다.

     

    안과 의사는 실명의 원인을 찾고자 몰두하지만 결국 자신도 눈이 멀어버리고 만다. 정부에서는 백색 실명 상태의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로 하는데 의사의 아내는 눈이 멀지 않았음에도 거짓말을 하고 남편을 따라나선다. 도착한 곳은 버려진 정신병원이다. 이후에 눈먼 사람들이 속속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리 친절한 책은 아니다. 일단 대화체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마저도 누가 말하고 있는 건지 알아보려면 집중해서 문장을 읽어나가야 한다. 또 문단도 거의 나눠져 있지 않기에 답답함이 느껴진다. 내용은 심오하고 철학적인 데다 예전 작품이다 보니 지금 시선으로는 불편한 구석도 있다. 중간부터는 읽는 속도가 나기 시작하지만 점점 더 시궁창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의사의 아내인데 그는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사람이다. 즉, 눈먼 자들의 발가벗겨진 내면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자 가장 끔찍한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고통은 더 심각해진다. 눈이 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봐야 하는 끔찍한 것들로 인해 고통받는다.

     

    나는 줄곧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신경이 쓰였는데 검은 안대를 한 노인과의 관계 때문에 더 그랬다. 찝찝하면서도 어떤 환상 때문에 만들어진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의 젠틀함과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매우 젊은 여성(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는 20대 내지 30대로 추정된다)과의 그런 관계는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 물론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겠지만 그다지 필요 없는 설정이었다고 본다. 서구권 특유의 눈만 맞으면 사랑에 빠지는 그런 류의 내용은 역시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그것도 매우 열린 결말이다. 책장을 덮은 이후로 등장인물들이 살아갈 모습을 생각하며 여운이 남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 쪽이다. 그런 세상에서 다행히도 미쳐버리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차가운 도시의 개인 눈물을 핥아주는 개를 맡아서 키울 것인지는 조금 궁금하다. 하늘을 까맣게 덮고 있던 먹구름이 단숨에 몰려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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