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풍선인간 / 찬호께이
    2020. 1. 6. 21:38

     

    2020년의 첫 책으로 찬호께이의 단편집 풍선인간을 읽었다.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작가지만 흥미가 생겨 국내에 정발된 몇 권의 책 중에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한 책이다. 총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풍선인간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각각의 다른 이야기들이다.

     

     

     

    이런 귀찮은 일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느낌이다. 주인공 풍선인간은 특수한 능력의 소유자로 자신이 '타깃'을 정하고 머릿속으로 그것이 풍선이라고 상상하면 대상의 모양을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구구절절 능력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진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성 자체는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첫 장에서 주인공 풍선인간은 공원에 앉아있다. 옆에는 시끄럽게 떠드는 어린 아이와 어릿광대가 있고 주인공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정신을 집중할 수 없던 그는 남자 아이에게 따끔하게 교육을 시켜주고 다시 벤치에 앉는다. 그리고 한적한 공원에서 사색에 잠긴다. 본래 파티에서 풍선으로 동물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던 자신이 왜 킬러로 전직하게 되었는지를 회상한다. 바로 그 엄청난 능력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생각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킬러가 됐다면서 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두려워하는 걸까? 나는 상상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하고 소리를 치고 다녀도 아무도 믿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 점이 바로 작가가 의도한 포인트일까? 아무튼 그는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면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한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목표물에 접근한다.

     

    제목처럼 귀찮아 하면서도 착실히 계획을 세워 수행하는 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읽기에 좋은 단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라고 생각하지만(SF와는 별개로) 그렇기 때문에 빠져드는 맛도 있는 것 같다. 정말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십면매복

     

    제목인 십면매복은 겹겹이 에워싸다, 포위하다라는 뜻이다. 각각 다른 배경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5성급 호텔이 배경이다. 유명 CEO의 기업 인수 축하 파티장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이 단편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거싱이 형사가 등장한다.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면 형사와의 대결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이번 단편은 주인공의 매우 치밀한 계획이 인상적인데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해서 여러 번 읽었었다. 책읽기에 소홀했던 나를 반성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경찰과의 대결에서 으레 그러하듯이 경찰의 멍청함도 인상적이다. 마술로 사람을 죽인다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형사와 멋지게 퇴장하는 척 하던 범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재미있었다. 유쾌하고 가벼운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지만 살인 방식과 장면 자체는 잔인한 편이었다.

     

     

    사랑에 목숨을 걸다

     

    이 작품이야말로 정말 할 말이 많았던 단편이다. 앞의 두 편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흔한 전개였다. 그렇지만 전개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말이 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말들이 너무 눈살이 찌푸려졌다.

     

    유명 부호와 결혼한 궈 부인은 딸인 치란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한다. 딸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자식으로 궈 부인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기는 했지만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궈 부인이 딸을 죽여달라고 한 이유가 나오자 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래서 제목이 '사랑에 목숨을 걸다'인 걸까?(정말 사랑에 목숨을 건 것인지는 모르겠다) 점점 더 이해가 되지 않기 시작했을 때 풍선인간이 궈 부인에게 보수로 받기로 한 것이 나오자 헛웃음이 터졌다. 얼토당토않은 것이었지만 궈 부인은 보수를 주기로 하고 이야기는 계속 된다.

     

    이야기는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솔직히 예상할 수 없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어이 없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이어졌다. 작중 열일곱 살로 나오는 치란의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나오고 작가의 머릿속이 의심스러워졌다. 돈이 문제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남편으로 나오는 인물은 매우매우 부자이다) 그 안에서 풍선인간이 혼자 멀쩡한 척 하는 것이 더 웃겼다. 미디어에서 수없이 많이 봐온 모습이지만 언제 봐도 말이 안 되는 모습이다. 궈 부인에게 그런 보수를 받기로 한 것이 마치 다른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계획의 일부였다는 듯 끌고 가는 것이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더 이상의 코멘트는 생략하겠다.

     

     

    마지막 파티

     

    네 개의 단편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9살 여자아이와 6살 남동생, 그리고 주인집 할아버지(이런 귀찮은 일에도 등장한다)이다. 남매는 방학을 맞아 할아버지의 집에 놀러와 2주 간 머물기로 했다. 그다지 놀러오고 싶지 않았던 누나 전전과 온갖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해 신이 난 남동생 샤오바오가 우연히 킬러와 브로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그리고 킬러에게 쫓기는 남매를 구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고군분투가 주된 내용이다.

     

    할아버지는 원칙주의자로 식사 시간에 오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 이 대목은 아이들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에 수긍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밥을 먹으러 간다. 그런데 밥을 먹고 나자 9살인 전전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19살을 9살로 읽었나 잠시 고민했다. 도대체 어느 9살 여자아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는 걸까? 이마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의 장면을 빼면 결말까지는 흥미로운 전개였다. 물론 아이들이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면과 생각을 가졌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특히 6살 남자아이가 너무나 비상한 추리력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텔레비전에 나오는 6살 아이만 봐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소설적 허용? 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랬다.

     

     

    총평은 몇몇 눈살 찌푸려지는 구간을 제외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는 건 언제가 될 지 모르겠다. 

     

     

     

    풍선인간 / 찬호께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업루티드uprooted / 나오미 노빅  (0) 2020.02.29
    소멸사회 / 심너울  (0) 2020.01.07
    노인의 전쟁 / 존 스칼지  (0) 2019.10.28
    사람의 아이들 / P. D. 제임스  (0) 2019.10.15
    역향유괴 / 원샨  (0) 2019.09.27

    댓글

Designed by Tistory.